F1 팀들은 해마다 두 가지 전쟁을 치릅니다. 하나는 챔피언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팀들과 벌이는 전쟁이고, 또 하나는 해마다 이래저래 바뀌는 규정에 맞추고 최대한 이득을 보기 위한 전쟁입니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워낙에 규정을 많이 뒤집는 판이라서 여기에 따라서 차량 개발을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올해는 전세계 경제 침체까지 겹쳐서 F1에서도 혼다 철수를 비롯한 찬바람이 불고 있는 판이라서 비용 절감을 위해서 많은 규정 변경이 이루어졌습니다.
타이어
드디어 올해부터는 접지면에 아무런 홈도 없는 슬릭 타이어가 쓰입니다. 그동안 과도한 타이어 성능을 제한하기 위해서 접지면에 원호를 따라서 홈을 판 그루브 타이어를 10년 동안 써 왔습니다만, 이제는 많은 규정 변화와 함께 단일 타이어 공급사 체제가 되어서 성능 제한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슬릭 타이어가 쓰이게 됩니다. 그동안 드라이버들은 그루브 타이어의 특성이 특히 코너링에서 "변태적인 주행을 하게 만든다"고 비판해 왔는데, 슬릭 타이어가 쓰이면서 이젠 드라이버들이 좀 더 컨트롤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슬릭 타이어를 쓰게 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FIA가 공기역학에서 나오는 그립보다는 기계적 특성에서 나오는 그립 쪽에 중심을 두려고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슬릭 타이어를 쓰면 그루브 타이어보다 그립이 20% 가량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서, 올해 공기역학 장치에 대한 많은 제한으로 잃게 되는 그립을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각 경기마다 두 가지 컴파운드가 공급되며 레이스 동안에는 두 컴파운드 모두를 적어도 한 번씩은 써야 합니다.
동역학 에너지 회수 시스템 (KERS)
올해부터 말 많고 탈 많던 KERS가 드디어 적용됩니다. 보통 브레이크는 운동 에너지를 마찰을 통해 열 에너지로 변환함으로써 차량의 속력을 떨어뜨립니다. 이 때 나오는 열 에너지는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지요. 하지만 KERS는 운동 에너지를 모터나 플라이휠을 통해 열이 아닌 전기 에너지나 다른 형태의 운동 에너지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이를 재활용하는 시스템입니다. F1 처럼 급감속이 많은 경우에 브레이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만 해도 상당할 듯합니다. 올해부터 F1에서 허용되는 KERS는 축적된 에너지를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부스트 버튼을 써서 차량 출력을 잠깐 높이는 데에 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제한은 약 80 마력으로 한 바퀴에 7초까지만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차량을 앞지를 때나 감속 후 다시 가속을 할 때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랩 타임으로 봤을 때에는 0.×초 정도 이득을 볼 수 있을 전망입니다.
하지만 KERS 개발에 여러 팀들이 꽤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페라리를 비롯한 몇몇 팀에서는 이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특히 페라리 회장인 루카 디 몬테제모로는 바보짓이라는 비난까지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또한 대략 60kg 정도가 되는 KERS 시스템이 차량에 들어가면 차량 무게 배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올해부터 슬릭 타이어가 쓰이면서 앞쪽 그립이 더 많이 생기는데 이것과 맞물려서 각 팀은 차량 설계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을 듯합니다. 아마도 중하위권 팀들 중에서는 KERS를 쓰지 않는 팀들도 여럿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엔진
엔진 동결은 올해에도 유지됩니다만, 회전수 제한과 관련되어 일부 수정이 허용되었을 때 다른 팀들은 이를 개발에 이용했지만 자신들은 그러지 않아서 출력에서 손해를 봤다고 투정을 부려 온 르노 팀에 한해서 일부 영역에 대한 개발이 허용되었습니다. 또한 비용 절감과 관련해서 작년까지는 엔진 하나로 2 경기를 써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3 경기까지 써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각 팀은 드라이버 당 한 시즌에 통틀어 엔진을 12개(경기에서 8개, 테스트에서 4개) 까지만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됐기 때문에 엔진 수명 연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회전수 제한이 19,000 rpm에서 18,000 rpm으로 내려갔습니다.
공기역학
올해는 차량 모양이 상당히 크게 변했습니다. 공기역학에 관련된 규정이 대폭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다운포스를 크게 떨어뜨리기 위해서 바지 보드, 윙렛, 연통, 터닝 베인과 같은 많은 공기역학 장치들을 금지시켰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앞뒤 날개의 모양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먼저 앞 날개는 150mm에서 75mm로 높이가 낮아졌습니다. 대신 폭은 1400mm에서 1800mm으로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드라이버가 차량에서 앞쪽 날개의 각도를 6도 범위 안에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는데 한 바퀴에 두 번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곧, 직선 구간에서는 각도를 낮춤으로써 공기 저항에서 오는 드래그를 줄이고, 코너에서는 각도를 올림으로써 그립을 향상시킬 수 있는데, 한 바퀴에 두 번 이 장치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원래 세팅으로 주행하다가 한 번 각도를 바꾸고, 다시 원래 세팅으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쓰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서킷의 레이아웃에서 유난히 특성이 다른 한 부분, 예를 들어서 구불구불한 저속 코너가 많은 서킷에 있는 긴 직선 구간에서 이러한 가변 날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쪽 날개가 공기역학 성능이 향상된 데에 비해서 뒷쪽 날개는 성능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높이는 엔진 커버 꼭대기에서 150mm까지 높아졌는데 폭은 1000mm에서 750mm로 25%나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전체 다운포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디퓨저가 뒷쪽으로 옮겨졌고 좀더 길어지고 높아졌는데, 이렇게 되면 차량 전체에 작용하는 다운포스가 상당히 줄어들게 됩니다. "공기역학에서 나오는 그립를 줄이고(다운포스 대폭 감소) 기계 특성에서 나오는 그립을 향상시킨다(슬릭 타이어)"는 FIA의 정책이 많이 관철된 셈입니다.
정리하자면, 2009년부터 변경되는 공기역학 관련 규정은 전체적으로는 다운포스를 떨어뜨림으로써 앞지르기 기회를 좀더 많이 주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들어서 뒷쪽에서 오는 차량들이 앞쪽 차량 뒤에 거의 붙었을 때 성능이 크게 떨어지면서 앞지르기가 힘들어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앞 차량의 공기역학 장치들이 많은 난기류, 곧 더티 에어를 만들어 내서 뒷 차량의 앞쪽 그립을 나쁘게 만들어서 컨트롤을 어렵게 했는데 이제는 이런 문제점이 많이 줄어들 듯합니다. 반대로 차량 앞쪽으로는 좀 더 많은 그립을 줄 수 있도록 해서 뒷 차량이 앞지르기를 위한 차량 컨트롤이 좀 더 쉬워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좀 더 변화가 확실히 느껴지실 겁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2009년 차량을 발표한 팀은 페라리 하나 뿐입니다만, 아마도 거의 모든 팀이 이와 엇비슷한 모양을 가질 것입니다. 왼쪽이 2008년 차량인 F2008, 오른쪽이 2009년 차량인 F60입니다.
테스트
2009년부터는 시즌 도중에는 별도 테스트가 금지됩니다. 따라서 시즌 중에는 주로 금요일 테스트에서 개발에 관련된 테스트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별도 테스트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아예 시즌 중 테스트를 금지시킨 것입니다.
그밖에, 지금까지 순위를 결정해 온 포인트 제도를 메달 시스템, 곧 우승을 많이 한 드라이버가 챔피언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버니 에클레스톤의 제안과 예선 방식 변경이 아직 논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적용될지는 FOTA-FIA 합의 때 조건으로 붙였던 F1 팬들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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