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미네르바에 대한 음모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검찰이 잡아들인 미네르바는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었다, 이런 얘기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고, 상당히 그럴 듯한 근거까지 제시하면서 음모론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늘 커다란 뉴스에서는 이런 음모론이 불거지곤 하니 이번에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근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 글들과 절필 선언 이후의 글들이 다르다, 아고라에서 썼다 지운 어떤 글에 뭔가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왜 마약 수사하는 데서 미네르바를 잡았냐, 등등... 사실 생각해 보면 아주 이상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는 '전문대 출신 30대 무직이 금융계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이나 알 수 있다는 그런 용어까지 써 가면서 글을 썼다는 게 말이 돼?'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게 음모론을 주장하는 글들 속에서 묻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진짜 대한민국 0.1% 상류층으로 미국 유학을 가서 미국 금융계에서 활약한 미네르바의 신화를 감히(?) 전문대 출신 30대 무직 따위한테 깨고 싶지 않은, 그런 욕망이 음모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증이 박약한 상태에서 정황이라는 건 짜맞추고 살을 붙이면 얼마든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유리하게 만들 수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나 '공식적인 진실'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편리한 무기가 되게 마련입니다. 세상사는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고 조금씩은 어긋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그 부분을 침소봉대하고 부풀려서 사람들의 기대심리와 맞아 떨어지게 하면 바야흐로 음모론은 분위기를 타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진짜 사실보다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과 맞는 것을 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겹습니다. '상류층 미네르바'가 졸지에 '백수 미네르바'로 전락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본인이 "내가 미네르바요"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저거 마약쟁이인데 검찰하고 짜고 미네르바로 둔갑시켜서 형량 협상하고..." 이런 음모론까지 나오는 건 정말 황당할 노릇입니다. 그만 좀 합시다. 이쯤 되면 검찰보다 상상력이 더 뛰어난 겁니다.
좋습니다. 그런 음모론을 다 인정해서, 설령 만약 검찰에 붙잡혀 있는 미네르바가 바지사장이라고 칩시다. 저 같으면 차라리 알아서 뒤집어 쓰겠다는 바지사장이 있으니 그냥 그 놈이 다 뒤집어 쓰라고 하고 싶습니다. '나는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을 억지로 잡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미네르바고 자기가 처벌 받겠다는데 그럼 차라리 잘 된 일 아닐까요? 제 할 일 다 한 진짜 미네르바는 정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검찰이 진짜 미네르바까지 이 잡듯이 뒤져서 기어이 조중동이 진짜 미네르바의 온갖 사생활을 난도질하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 정말로 진짜 미네르바가 있다면, '바지 미네르바'가 저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도 '쟤는 가짜고 내가 진짜요'라고 나타나지도 않는 걸 보면 차라리 진짜는 이 기회에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요? 저 같으면 진짜 미네르바가 편안한 여생을 누리도록 행복을 빌어 주면서, 멍청한 이명박과 검찰을 비웃겠습니다. 어쩌면 100년, 200년쯤 뒤에는 <홍길동전>에 필적할 신출귀몰 논객 <미네르바전>이 탄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홍길동전>에 보면 나중에 홍길동이 관가에 자수를 하는데 알고 보니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어쩌면 지금 상황이 딱 그럴 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진짜 미네르바가 율도국으로 가시든 이어도로 가시든, 파편적인 정황에 살 붙이고 바람 집어 넣어서 음모론에 너무 빠져들지 맙시다. 오히려 전문대 출신 30대 백수만도 못한, 뉴욕대는 뒷문으로 들락거렸을 듯한 강만수나 실컷 비웃어주는 게 훨씬 이로울 겁니다. 미국 MBA 나와서 수억 연봉 받는 사람들이나 금융 자본주의에 정통할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30대 백수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시한 허당이었더다라, 이 얼마나 통쾌한 쾌거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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