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강타한(그리고 여전히 강타하고 있죠)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 위기로 이전되면서 거의 대부분 산업 분야들이 급속도로 얼어 붙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예외가 아니라 미국 자동차 빅 3이 구제금융을 받는 판이고 이제는 GM을 제치고 세계 1위라 할 수 있는 토요타조차도 사상 처음으로 영업 적자를 기록할 모양입니다.

이러다 보니, 모터스포츠 쪽에도 영향이 밀려 오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아마도 혼다가 F1에서 철수하기로 전격 선언을 한 일일 것입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에 썼던 '혼다, 포뮬러 1 철수 발표'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F1 참여로 아일톤 세나의 전성시대를 함께 했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회사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자존심, 혼다가 F1에서 철수함으로써 모터스포츠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F1 비용 절감 문제가 급속히 진전되어서 결국 최근 국제자동차연맹(FIA)과 포뮬러 1 팀 협회(FOTA) 사이에 비용 절감안이 타결되었습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에 썼던 '포뮬러 1 비용 절감 계획 발표'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포뮬러 1은 그래도 양반입니다.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은 문제가 정말 심각해졌습니다. WRC에 참여하고 있던 스즈키가 12월 15일에 철수 선언을 하더니 이틑날인 16일에는 스바루까지 WRC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특히나 스바루는 20여 년간 WRC에 참여하면서 여러 차례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고 상당한 성과를 올린 팀이라 충격이 큽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WRC에 남은 메이커는 달랑 포드와 시트로엥 두 곳 뿐입니다. 게다가 포드 역시 지금 미국 자동차 빅 3 모두가 파산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라 구제금융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고, 구제금융이든 뭐든 지원을 받게 되면 그만큼 댓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 댓가는 씀씀이를 대폭 줄이고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일 테고, 그렇게 되면 포드 역시 WRC에서 철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빅 3 중에서는 그래도 포드가 자금 사정이 좋은 편이라 구제금융 대상에서도 제외되었고, 일단 포드는 계속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만, 최악의 경우 포드까지 나가면 WRC 존립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단 유럽 쪽 자동차 회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태는 지금과 같은 선에서도 진정될 듯합니다만, 담배 회사에서 금융이나 IT 쪽 회사들로 바뀐 스폰서들이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분야라서 스폰서십 중단이나 규모 축소와 같은 상황도 예견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내년부터 포뮬러 1 스폰서로 참가하는 LG처럼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하는 곳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대체로는 하강 곡선으로 갈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페라리와 스폰서십을 체결한 인도의 타타그룹이나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 자본이 매물로 나온 혼다 팀을 인수한다는 루머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혼다 팀 쪽에서도 '높은 수준'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들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경기 침체에서 예외일 수는 없겠지만 인도나 중국을 비롯한 신흥강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차원에서 비용이 상당 부분 절감될 포뮬러 1이나 WRC에 참전할 전망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WRC에서 스바루 팀을 운영하고 있던 프로드라이브가 원래는 F1에 참가하려다가 비용 문제로 포기했기 때문에 괜찮은 스폰서를 잡고 새시나 엔진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F1에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F1에서 포스 인디아와 맥클라렌이 높은 수준으로 파트너십을 맺기로 했기 때문에 기존 팀과 파트너십으로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국내 역시도 내년 상황이 어떻게 될 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워낙에 기반이 허약한 데다가 안 그래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썰렁한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감산과 휴업을 하고 있는 판이라서 내년에도 별 기대할 게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자동차 회사로서는 유일하게 워크스 팀으로 참여하고 있는 GM대우 팀이 내년에도 계속 참전할지도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미 GM대우 자체도 감산에 들어갔지만 구제금융을 받았어도 계속 파산 가능성이 남아 있어서 신용등급이 파산 직전 단계까지 추락한 모회사 GM이 만약 쓰러지는 상황이라도 생긴다면 당연히 GM대우 이미지도 타격이 생기고 자동차 판매량이 더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경제 위기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도 않았고 내년 동안은 우울할 거라는 전망이 많은 상황입니다. 팀들은 비용 절감에 안간힘을 쓸 것이고 갖가지 방안들이 나올 것입니다. 물론 거품을 뺀다는 차원에서는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자칫 포뮬러 1처럼 정점을 이루고 있는 시리즈는 자칫 비용 절감에 너무 집착하다가 지위가 깎이고 흥미가 떨어질 위험도 있긴 합니다. 이래저래, 내년 모터스포츠는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꽤 힘겨울 듯합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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