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혐의로 구속된 KT의 남중수 사장 후임으로 이석채 씨가 내정됐습니다. 이석채 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냈지요. KT 관계자 말은 "이 전 장관이 KT의 비전 실현과 혁신에 필요한 기획력·추진력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입니다만, 이 과정이 좀 이상합니다.

원래 KT에서는 사장 응모자를 접수 받고 나서 심사를 거친 뒤 면접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11월 15-16일에 면접을 보기로 하고 호텔까지 예약해 놨지만 14일에 이를 갑자기 취소해 버렸습니다. 이유는 이석채 씨 때문입니다. KT 정관 제25조에는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 및 그와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임·직원 또는 최근 2년 이내에 임·직원이었던 자'는 회사의 이사가 될 수 없고, 이사가 된 이후에도 이 사실이 드러나면 직위를 잃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석채씨 씨가 왜 여기에 걸리는지는 좀 있다 얘기하겠습니다. 재밌거든요.

그래서 KT가 선택한 방법은 이석채 씨를 임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관을 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11월 25일에 KT는 긴급 이사회를 열었고 문제의 25조를 개정해서 이석채 씨의 결격사유를 없애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옷에다 몸을 맞추는 식으로 정관까지 개정하고 나서 추가 응모를 받았을 때 비로소 이석채 씨가 응모했습니다. 막차를 탔지만 결국 이석채 씨로 낙점되었지요. 결국 정권이 미는 사람을 정관까지 뜯어 고쳐서 사장으로 임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비리 혐의로 구속된 남중수 사장의 후임이라면 적어도 비리 전력 같은 게 없어야 말이 됩니다만, 이석채 씨는 정통부 장관 시절에 비리 혐의로 유죄 판결까지 받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석채 씨가 정통부 장관으로 있었을 때인 1996년에 PCS 사업자 선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최종 선정된 회사는 KT(KTF), 한솔그룹(한솔텔레콤), 그리고 LG그룹(LG텔레콤)이었습니다. 한솔텔레콤은 나중에 KTF에 인수되었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LG그룹의 사업자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결국 수사 결과 심사과정에서 청문 심사의 배점 방식을 LG 쪽에 유리하게 배점 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지요. 그리고 1심에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2심에서는 이 판결이 뒤집혀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전 장관이 선정과정에 개입했기 때문에 특정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탈락한 다른 경쟁사가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보다 더 우월하다는 증거도 부족하다" 그러니까 배점 방식이 바뀌어서 LG텔레콤이 되긴 했지만 LG텔레콤을 위해서 배점을 바꾸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됐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을 두고 결국 환란책임에 대해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도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곧, 잘못은 있지만 정책 판단의 잘못을 지금의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된 데에는 이석채 씨가 LG 쪽으로부터 뭔가 댓가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 컸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쨌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깨끗한 거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 글 처음에 이석채 씨가 사장으로 낙점되는 데 결격사유가 되었던 KT 정관 제25조 얘기를 했습니다. 2년 이내에 경쟁사 이사로 있었던 사람은 이사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도대체 이석채 씨가 경쟁사 어디의 이사였느냐, 이게 재밌습니다. 이석채 씨는 장관 퇴임 후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 자리에 앉았고, 코오롱유화와 SK C&C의 사외이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2007년 3월 23일에 이석채 씨가 LG전자의 사외이사로 선임됩니다. 이 때 주총에서는 남용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는데, 남용 씨는 바로 LG텔레콤의 대표이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아까 이석채 씨가 1심에서 집행유예까지 받았던 이유가 PCS 선정 과정에서 배점방식을 바꾸어서 그 결과로 LG가 사업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죠. 당시 2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근거 중에 하나는 댓가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에 이석채 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이듬해인 2007년에 LG전자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습니다. 대기업 사외이사란 자리가 그야말로 날로 먹는 찬성 거수기란 사실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력인사 모셔다가 돈 퍼주면서 덕을 보는 자리로 전락한지 오래죠.

결론적으로, 이석채 씨는 정통부 장관 시절에 LG에 유리한 방식으로 정당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배점을 바꾸었고, 나중에 가서 LG 사외이사가 되었습니다. 법적으로야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문제일 뿐이고, 이런 정황을 보면 그야말로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설명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KT와 KTF는 현직 사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임 사장은 적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옳겠죠. 그런데 장관 시절에 특정 업체에 유리한 방식으로 사업자가 선정될 수 있도록 멋대로 배점 기준을 바꾸고, 나중에 그렇게 사업자로 선정된 LG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석채 씨가 과연 KT의 신임사장이 되는 것이 낙하산 사장 논란은 둘째 치고 과연 제대로 된 인사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어떨까요? 이런 사람을 정관까지 고쳐가면서 굳이 사장으로 앉히려고 하는 꼴을 보면 이 정권의 자리 나눠먹기가 공기업을 넘어서 민간기업으로까지 이어지는 듯합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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