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김정일 건강이상설 때문에 북한이 상당히 민감한 상황에서, 삐라 살포 문제까지 불거져서 북한이 계속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좀 자중해도 모자라건만,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최후의 궁극 목표"라는 말을 한 것 때문에 또다시 북한이 열 받았습니다. 아예 이제는 이 정부와 남북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까지 나서고 있는 판입니다. 금강산 관광도 중단됐고, 요즘은 개성공단이 폐쇄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입주 업체들이 통일부 장관을 쫓아가서 매달리는 판입니다만, 통일부의 반응은 무척이나 뜨뜻미지근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두 가지 '설마'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 정책은 두 가지 '설마'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첫번째 설마는, '설마 우리가 미국과 동맹 관계인데 우리를 왕따시키고 북한하고만 관계를 추진하겠어?'이고 두번째 설마는 '설마 북한이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서 손 벌릴 데가 우리 아니고 있겠어?'입니다. 촛불 시위 때는 인간사냥 마일리지는 물론이고 아예 법을 바꿔서라도 집회 시위의 자유를 근본부터 틀어막겠다던 정권이 탈북자 단체의 삐라 살포는 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비롯해서 최근 정권 쪽에서 아예 남북 관계를 아작내자고 작정한 듯한 발언들의 근원은 결국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한들, 설마...'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모습입니다.
사실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대결 구도로 가는 게 이명박 정권에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개성공단 중단을 비롯한 남북 관계 악화는 수구 보수층이 이명박 정권을 지지할 수 있는 구실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망가진 경제 때문에 보수 언론들조차도 이명박 정권의 실책을 공격하고 있는 판인데, 남북 관계를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이들을 돌려세울 수 있는 좋은 계기입니다. 적어도 수구보수층들은 경제가 어떻게 되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남북 관계가 대결구도로 갈 수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인 족속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북 관계에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 정부의 '애국' 마케팅이 대중들에게 더 약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 관계 악화는 경제를 망가뜨린 이명박 정권에게는 오히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이명박 정권의 생각은 두번째 설마, 곧 '남북 관계가 아무리 망가진다고 해도 설마 자기들이 어쩌겠나? 배고프면 우리한테 손 벌리지...'라는 거지요.
만약 개성공단에 대기업 공장들이 입주했다면...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계속 악화되고 남한 정부에서 계속 여기에 기름을 붓는 사건을 저지른다면 정말로 개성공단은 중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개성공단이 지금처럼 중소기업들로 채워진 게 아니라 대기업 공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그런 상황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할 테면 해 보라'고 나섰을까요? 제2롯데월드를 세우게 해 주려고 서울공항 이전까지 생각한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뒤집어서 말하자면, 개성공단 중단이 그저 말이 아닌 현실화될 수 있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데도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고 계속 기름을 붓고 있는 이유는 개성공단은 노무현의 업적이고, 자기들이 열심히 챙겨줘야 할 기반도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철저하게 지지기반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한 정책들로 일관해 나갔습니다. 대부분 경제 정책들이 '건설'과 '대기업'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초기 한반도 대운하 문제에서부터 최근 수도권 규제 완화나 종부세 무력화를 비롯한 수많은 정책들 속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건설과 대기업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이명박에게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노무현의 지지기반 가운데는 중소상공인들도 상당히 많았지요. 오히려 개성공단으로 앞장서서 입주한 그 기업들은 워낙에 편견으로 가득찬 이명박의 눈에는 '노빠' 쯤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성공단은 앞에서 얘기한 여러 가지 득실 관계를 고려했을 때 수 틀리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입니다. 게다가 지금 이명박 정권의 태도는 '협력'이 아니라 '은혜'의 관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성에 공단 차려서 먹고 살게 해 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여기 문 닫으면 너네들 굶을 거냐?' 하는 식의 관점이 아니고서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 사장들이 정부에 그렇게 매달리는 데도 삐라 살포조차도 막지 못하는 정부의 행태가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삐라를 뿌리는 쪽에서 '아, 이 삐라를 읽고 북한 주민들이 대오각성해서 혁명이라도 일으킨다면...' 이렇게 생각할 리도 없습니다. 그저 남북관계의 판을 깨겠다는 '깽판부리기'일 뿐입니다. 이것을 방관하는 정부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막으면 수구보수층이 크게 반발할 것이고, 방조하면 그래도 이명박 정부에게 지지를 보내면서 역시 '좌파 노무현 정권의 재집권'을 몰아내기를 잘 했다고 외칠 것입니다. 결국 '설마'에 바탕을 둔, 자기 편 끌어안기인 셈입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물론,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남한은 6자회담의 틀 안에 묶어 놓고서 북미가 직접 교섭을 통해서 획기적으로 관계를 개선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차피 북한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최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이고, 그 이후에 북한 체제는 크게 변할 것입니다. 김일성 생전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두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여 왔던 데 비해,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나돌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아직 후계자 얘기는 물밑에서만 나오고 있다는 점은 김정일 이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체제로 갈 공산이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과 같은 세습 독재 체제를 김정일 이후에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 동안에 걸쳐서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세뇌를 시키지 않으면 곤란한데도 안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해야 할 점입니다. 결국 북한이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시스템은 미국-중국 사이에서 협력 줄타기를 하면서 차근차근 국제 사회 속으로 발을 내딛고, 지금과 같은 아들 후계 구도보다는 지금까지 갖추어진 시스템을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짜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어쨌거나 하느님과 동기동창 쯤인 절대군주 체제를 포기하겠다면 결국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축 없이 체제 유지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그들의 체제를 '신앙심'이 버텨주고 있었지만 그 버팀목이 사라지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의 두 가지 '설마'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익이 된다면 충분히 이중플레이를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미국과 단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반발이야 하겠지만 결국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북한이 수교 수준까지 관계 개선이 된다면 미국은 아낌없이 북한에 퍼줄 겁니다. 그래봤자 이라크 전쟁에 들어가는 돈보다는 싸게 먹히는 데다가 파괴하는 비용이 아니라 생산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명분도 더 좋습니다. 일단 북한과 관계가 정상화되면 그 다음 미국의 목표는 북한을 빠르게 성장시켜서 세계 시장의 판을 키우고 경제적으로 확실히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미국-중국을 동시에 이용해 먹으면서 서로 퍼주기 경쟁을 유도하겠지요.
이명박 정권의 두 가지 '설마'를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미국-북한에게 동시에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걱정들이 나오고 있는 판에 자기 지지기반만 생각하면서 '보수층 결집'이라는 득실관계를 따지면서 남북 관계를 망치다가는, '설마'가 사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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