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근영 씨에 대한 지만원 씨의 망언 때문에 한참 논란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판에, 어처구니 없는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바로 '강의석 지만원은 닮은꼴 스트라이커'란 제목으로 올라온 글인데, 그것도 나름대로 '시사평론가'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하재근 씨의 글입니다. 하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강의석 씨를 어처구니 없이 매도했으니 저도 하재근 씨에게 좀 심한 말 하나 하겠습니다. 이른바 '시사평론가'가 이렇게 통찰력 없는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재근 씨가 지만원과 강의석을 닮은꼴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지만원이 펼치는 주장은 '섹시'하고 자극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황당한 헛소리다. 문근영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이 좌파의 음모라는 말에 누가 동의하겠나? 이렇게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대표논객이라고 포지셔닝 되는 것은 보수진영의 정치적 자해극이다.

(중략)

지만원의 열정적인 단독 드리블과 화려한 강슛이 자살골인 것처럼, 강의석의 화려한 개인플레이도 자살골이다.

강의석의 ‘섹시’한 ‘돌출’ 행동은 지만원의 단독 플레이 이상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 머리 속에는 강의석이 한국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는 인식이 각인된다.

지만원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 자기 세력을 코미디 집단으로 만드는 것처럼, 강의석도 상식과 온도차가 있는 이슈를 화려하게 부각시킴으로서 진보진영을 경박하고 무책임한 집단으로 만든다.

지만원 씨의 망언이 문제인 것은 그 근거 자체가 기본적으로 왜곡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데다가 그가 펼치고 있는 주장도 진지함이 없이 황당하기만 한, 다시 말해서 뭔가 생각하고 되짚어 볼 가치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재근 씨 말마따나 '황당한'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강의석 씨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펼치는 퍼포먼스가 너무 자극적이고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가 펼치는 기본적인 문제는 충분히 진지한 주제이고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제기되어 온 문제입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라는 문제는 워낙에 남녀 문제를 비롯해서 다양한 피해의식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눈치만 보아 오면서 쉽게 뛰어들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강의석 씨가 이걸 '노골적'으로 건드린 것이죠. 당신에게는 그저 섹시한 돌출행동으로 보이겠지만 강의석 씨는 온갖 기득권이나 기회를 포기하고 험한 길을 선택한 겁니다. 도대체 그 섹시한 돌출행동이 강의석 씨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된다고 보십니까? 저 사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삼성에서 데려가겠습니까? 게다가 "그럴 때마다 국민들 머리 속에는 강의석이 한국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는 인식이 각인된다"란 구절은 더더욱 황당합니다. 누구 맘대로요? 누가 그러더랍니까? 한국 진보진영의 대표 아이콘이 강의석이라고요? 당장 명동이라도 나가서 설문조사 한 번 해 볼까요? 자기 혼자만의 주관적인 편견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써대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재근 씨 당신의 편견이 무슨 국민 정서의 '대표 아이콘'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 보네요.

그런데 그 다음 하재근 씨의 주장은 더욱 해괴합니다. 하재근 씨가 '진보'를 이렇게 보고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입니다.

한국인의 모든 고통은 양극화와 경제적 박탈감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민생의 고통들이다. 대표적으로 교육, 고용, 노동조건, 육아, 주거 등의 문제들이다. 심지어 요즘엔 먹는 문제까지 대두된다. 결식아동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진보진영에게 원하는 것은 이런 민생사안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헌신, 그리고 책임 있는 정책 대안이다. 강의석은 이런 것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슈들을 너무나 화려하게 내세워 국민들로 하여금 진보진영에 실망하도록 이끈다.

물론 한국의 진보진영이 가장 주요하게 역점을 두어야 하는 가장 큰 담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에서 오는 양극화와 경제적 박탈감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재근 씨는 어처구니없게도 강의석 씨가 이런 이슈와 '상관 없는' 다른 이슈를 '화려하게' 내세워서 진보진영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 소수자 문제, 환경문제, 군 가산점 문제를 비롯해서 진보 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이슈들은 하재근 씨의 필터로 걸러보면 '상관없는 이슈'가 됩니다. 그렇다면 '상관없는 이슈'인 동성애 커밍아웃으로 '화려하게' 파문을 일으켰던 홍석천 씨는 아마도 하재근 씨 눈으로 보면 강의석과 닮은꼴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분 중에 자칭 '약쟁이' 김부선 씨가 있었지요. 대마초 합법화를 들고 나온 김부선 씨가 진보신당 홍보대사가 되었을 때 진보진영에서도 참으로 말이 많았습니다. 하재근 씨의 관점으로는 대마초 합법화라는 '상관없는 이슈'를 들이댄 '섹시한' 김부선 씨 역시 지만원 씨와 동급일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앞장서는 '단일한 강철대오'입니까? '진보'라는 틀 안에는 하재근 씨가 주장하는 주요한 담론 말고도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이슈들이 모여 있습니다. 진보진영은 줄 맞춰 서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모두가 돌격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집단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 존재하는, 권력과 기득권으로 억압되어 온 이슈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현실로 끌어내어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도록 하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하재근 씨가 무슨 자격으로 함부로 군대 문제를 '상관없는 이슈' 치부합니까? 당장 오늘 내일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군대 문제는 커다란 문제입니다. 신성한 의무니, 그래도 남자라면 군대는 가야 한다느니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 갈 수 있으면 가지 마라'고 말하는 게 군대입니다. 군대 문제는 항상 남녀 문제에서 감정적인 치고 받기 대상이 되고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게 왜 '상관없는 이슈'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하재근 씨 말처럼 국민들이 진보진영에 '그런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그런 것'만 해야 한다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물론 강의석 씨의 주장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너무 급진적인 주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정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아나키스트들의 뿌리깊은 역사처럼, 군대를 없애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으며 군대가 평화를 지킨다는 주장은 허구일 뿐이라는 주장 역시도 뿌리깊은 역사를 가져온 주장이며 충분히 '의미'는 가지고 있는 주장입니다. 하재근 씨는 아나키스트가 지만원과 닮은꼴로 보이시는지요?

사람들이 강의석 씨의 퍼포먼스 때문에 진보진영에 실망한다고 해서 강의석 씨를 비난하는 것은 하재근 씨가 얼마나 진보에 대해서 무식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뿐입니다. 오히려 진보의 가치를 믿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저러한 급진적인 주장조차도 우리 사회가 하나의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존재를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강의석 씨에게 '현실로 보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라고 말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목소리를 높여서 얘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담론이나 문제제기를 수용하는 능력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설령 강의석 씨 때문에 진보가 피해를 본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보고 끌어 안아야 하는 게 진보이고, 끌어 안을 수 있는 게진보입니다. 그게 진보가 가진 힘의 근원인 '다양성'입니다.

강의석도 그렇다. 진보진영에도 불면의 밤을 보내는 정책연구자들이 있다. 또 세심하게 민생경제를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연구보고서는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돼도 국민에게 읽히지 않는다. 섹시하지 않으니까. 강의석의 화려한 플레이가 국민들 머리 속에 압도적인 이미지로 남으면, 진보진영에서 불면을 밤을 보냈던 연구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지난 강의석의 알몸 이벤트 때 비판매체가 이를 거대하게 부각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쯤 되면 한마디로 '블럭버스터 영화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는 진지한 예술 영화가 장사가 안 되니 블럭버스터 영화 하지 말라'는 꼴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강의석이 알몸 이벤트 안 해도 섹시하지 않으면 보도 안 됩니다. 진보진영의 연구보고서 아니라도 언론 지면을 채울 섹시한 일들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 안 되면 그 연구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됩니까? 도대체 언제 그렇게 언론들이 진보진영 연구보고서를 잘도 인용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역으로, 그 연구보고서들을 좀더 섹시하고 사람들의 뇌리에 잘 꽂아넣을 연구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진지한 연구 결과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게 왜 강의석의 책임입니까? 영화에도 블럭버스터 영화, 섹시 에로 영화, 코미디 영화, 예술 영화와 같은 다양한 표현들이 있듯이 진보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지한 톤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열심히 연구한 진지한 결과물을 내놓는 곳이 있는가 하면 '섹시하고 경박하게' 적어도 아무도 말도 제대로 못 꺼냈던 이슈를 정면으로 꺼내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가 진보하면서 예전에는 말도 되지도 않고 용납되지도 않았던 것이 수용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이 진지하게 불면의 밤을 보내는 연구자들만으로 이루어졌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온갖 욕을 다 먹어 가면서, 때로는 같은 진영에서까지 경원시당하면서도 경박, 혹은 과감하게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들 역시도 한몫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성애자 문제만해도 당시에 그렇게 십자포화를 맞았던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 사건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는 지금보다는 많이 느렸을 것입니다.

하재근 씨의 주장대로라면 촛불시위 때 마우스를 끌고 다닌 퍼포먼스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 나라 대통령을 '쥐'로 표현하면서 질질 끌고 다니다니, 이렇게 경박스러운 태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외국의 동물보호단체나 정치 단체의 누드 시위는 어떻습니까? 이것도 '경박스럽기'로 말하면 강의석 원조 뻘입니다. 하재근 씨 눈에는 이들도 진보진영에 커다란 피해를 끼치는 이들로 보이겠군요. 도대체 진보는 그렇게 진지하고 학구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진보는 진지하고 지적이어야 하며 경박스럽거나 '섹시하면' 피해가 간다는 하재근 씨의 그런 태도는 오히려 진보를 어렵고 감히 접근하기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해서 정작 서민들은 진보에서 멀어지고 먹고 살 만하고 가방끈 긴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낳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진보는 분야와 이슈가 다양하고 그 표현의 방법도 다양합니다. 우리가 '단일한 강철대오'가 아니라 생각의 다양성,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가 그러한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재를 인정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 자체도 진보의 가치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신이 멋대로 설정해 놓은 '강철대오'를 이탈한 강의석 씨를 지만원 씨와 닮은꼴이라고 비웃는 하재근 씨야 말로 자신의 저변이 얼마나 '사이비 진보'인지를 드러내는 꼴에 불과합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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