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회담 때문에 미국에 가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또 '어록'에 들어갈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경제를 비롯한 국내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가서까지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나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유치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저렇게 사사건건 전 정부를 걸고 넘어질 만큼 경제정책에서 노무현과 단절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종부세와 같은 부동산 문제에서는 확실히 참여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양극화 문제보다는 거시경제지표와 성장에 집착하는 모습, 그리고 한미FTA 조기 비준에 안달난 모습을 보면 이 정권은 참여정부의 기반이었던 신자유주의를 이어받고 있는 상황입니다(정확히 말하면 이어받아서 노골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지요). 미국 쇠고기 문제만 해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설거지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며 오히려 당시 협상 대표였던 민동석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미국의 선물"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들고 나오는 판입니다. 그런데 노무현보다 훨씬 노골적이어서 그렇지 신자유주의와 연장선상에 있는 이명박이 저런 식으로 외국까지 나가서 전 정권을 걸고 넘어질 권리가 있는 것일까요?


정작 못해 먹겠는 건 국민들

이런 상황에서 오늘 경향신문의 머릿기사는 <좌초하는 'MB노믹스'>입니다. 출범 1년도 안 돼서 성장률과 일자리가 반토막 나고 국민소득은 1만달러대로 내려 앉았다는 기사입니다. 또한 외환보유고는 501억 달러나 줄어들었고 이런 상황에서 고환율로 위기를 자초한 외환 정책 국민연금을 통해서 증시 떠받치기를 한 결과 투자 손실은 물론 외국인들의 자본 유출만 도운 꼴이 된 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계속 'IMF보다 더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저라도 어디 그 '서민'에서 벗어나겠습니까마는,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방송 장악, 미네르바의 절필 선언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표현 자유의 탄압, 국정원 기능 강화를 통한 공안 통치 획책, 거기에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문제를 비롯해서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까지 겹쳐서 삶의 질은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박 정권은 이런 상황에는 아랑곳 없이 금융과 재벌에대한 규제 완화, 공기업 사유화,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을 밀고 가겠다면서 부자들이 돈이 많아지면 서민들에게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는 강변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돈이 많아 봐야 그게 소비로 다 돌아가는 것도 아니며 소비 패턴은 서민들에게 골고루 수혈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아랑곳 없이 서민들을 부자들 떡고물이나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노예로 만들려는 상황입니다.

물론 노 전 대통령도 한미FTA와 같이 비판 여론 따위 알게 뭐냐는 듯 독재권력이 울고 갈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못해 먹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개혁과제들이 좌초하기도 했습니다(사실 그런 면에서는 정작 밀어붙여야 할 건 그렇게 못 하고 그러지 말아야 할 건 밀어붙이는 모습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출범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서 20%대를 기어다니는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바깥 목소리에는 귀를 틀어막고 제멋대로 고집 부리고 밀어붙이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야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먹을 수 있으니 '못해 먹겠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겠지요. 물론 이제는 투기 지역도 대폭 해제됐겠다, 수도권 제한도 풀렸겠다, 종부세까지 무력화됐으니 부동산 부자들 역시도 마음대로 해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못해 먹겠는 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삶의 질이 급속하게 추락해 가고 있는 서민들입니다.


차라리 '못해 먹겠다'는 대통령이 낫겠다

저도 사실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못해 먹겠다'는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입니다. 자신과 측근들의 잇따른 헛발질, 서민들의 삶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머리 숙이는 그 말 좀 듣고 싶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끝까지 강만수 같은 수준 미달의 측근들을 부여잡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국민들이 '못해 먹을' 지경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못해 먹겠다'는 발언이 나왔을 때, '대통령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인가'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물론 언론을 통해서 그 말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지만 그렇다 해도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과 비교해 본다면, 어쩌면 '못해 먹겠다'는 말은 그나마 바깥의 다른 목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한다는 표현일 테니, 그나마 차라리 그런 말을 하는 대통령이 귀를 틀어막고 곧 죽어도 못해 먹겠다는 말은 절대 안 하겠다는 대통령보다는 나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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